한국 여자와 결혼해 미국 땅에서 처가살이를 하는 백인 남자의 실화 장편 소설!
책의 주인공은 피곤할 정도로 생각이 많은 지적인 모범생 타입의 남자인데, 수많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는 점이 좋았다. 미드나 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약간 답답하고 우유부단하면서도 유쾌한 인물이 연상되던데,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날 거 같다. 더구나 번역도 무척 좋아서 초반에 정말 대박인 책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장모님과의 갈등은 미미하고, 복권을 계속 파느냐 마느냐, 커피를 바꾸느냐 마느냐 하는 내적 갈등이 더 많은 편이라 갈수록 재미가 약간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 주인공, 진짜 괜찮은 사람이다. 단점과 장점을 분리해서 대할 줄 아는 사람이랄까. 자신과 안 맞는 점들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리지 않는 사람이랄까. 장모님도, 처가살이도, 미처 상상도 못 했고,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면들이 참 많지만 무작정 거부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피하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델리 점원인 드웨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렇다. 드웨인 역시 미드나 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인물로, 어릴 때 결혼해서 벌써 꽤 큰 아이들이 있고, 아내와는 이혼했으나 만나는 여자는 끊이지 않으며, 하루 벌어 하루 살고, 총까지 소지한 거친 흑인 남자다. 학자 집안에서 자라 문예지 편집자로 일하는 주인공과 사실 여러모로 잘 맞지 않는 타입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드웨인을 두고 머릿속으로 많이 구시렁거렸다. 나는 그래서 주인공이 드웨인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래 대목을 읽으면서 '아...!' 싶었다. 단점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아니, 그래야겠구나. 그래야 삶이 풍요로워지는 걸 텐데. 드웨인의 장점을 진심으로 알아보고,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주인공에게,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 나는 그만 큰 감명을 받았다.
드웨인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듯했지만, 나는 걱정이 됐다. 그처럼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일자리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다니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엄청난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일자리를 벌써 얻었어야 했다. 하찮은 일자리라면, 최소한 평생을 보내온 동네에서라도 구할 수 있어야 했다.